[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대학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성급했다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법학 박사 | 2022-05-06
대학 인권센터란, 학내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안 대응 역할을 비롯하여 연구와 조사, 교육 등을 통해 대학 내 인권 의제를 발굴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대학 인권 증진을 도모하는 인권 기구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2년 서울대학교와 중앙대학교 인권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인권센터는 대학 내 인권 기구로 자리 잡아왔다. 이러한 인권센터 모델은 단순히 성희롱·성폭력 사안을 포함한 인권침해를 다루는 ‘고충상담기구’에 그치지 않고 학내 인권 증진을 위한 교육, 연구, 홍보 등의 활동 등 전반적인 인권 증진 업무를 수행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인권센터 위상, 재정립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학 인권센터는 실제 인권 기구로 인식되기보다는 인권 침해 사건의 처리를 담당하는 ‘고충상담기구’로서의 위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정된 예산과 인력 내에서 대학 내 가장 시급한 인권 의제인 인권침해 사건 처리에 많은 업무가 할당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영향일 것이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대학 인권센터 운영 실태 개선방안 연구’ 결과도 역시 이러한 고충상담기구화 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고질적인 인력과 예산 부족, 전문 인력의 전문성 확보 어려움 등으로 인해 이러한 고충상담기구의 역할마저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 내 인권 기구로 인권센터가 이 같은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권 기구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그 설립과 운영의 당위를 확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에 2021년, ‘고등교육법’ 개정을 거치며 드디어 대학 인권센터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그렇다면 2022년 현재, 대학 인권센터의 상황은 어떠할까?
‘고등교육법’ 제19조의3, 반쪽짜리 규정
대학 인권센터 설치의 의무화는 2021년 3월 23일 ‘고등교육법’ 제19조의3이 신설을 통해 규정되었으며, 2022년 3월 24일부터 시행되었다. 동 조의 신설은 “학교는 교직원, 학생 등 학교 구성원의 인권 보호 및 권익 향상과 성희롱·성폭력 피해 예방 및 대응을 위하여 인권센터를 설치·운영”할 것을 명시했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그리고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에 따라 기존 대학 내 인권 기구가 인권센터로 전환·개소하거나 신설되면서 대학마다 구성원과 소통할 수 있는 인권 기구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개소까지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동 조는 대학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과 인력’에 대한 책무가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물론 주요업무를 제시함으로써 인권기구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고는 있다). 다만 인권센터 설립·운영에 필요한 재원에 대해서는 동 조 제3항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제1항에 따른 인권센터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거나 보조할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법률에서 “할 수 있다”의 의미는 “안 해도 그만”일 수 있다. 대학 인권센터의 설치와 관련된 재원에 대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명확한 책무가 제시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동 조와 동 시행령은 인권센터의 업무를 규정함으로써 인권기구로서의 위상을 명확히 했다는 데 의의가 있으나, 그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재원 등은 “할 수 있다.”라는 선언적 명시와 “대학 재량”에 광범위하게 맡겨둔 것이다.
성급했던 대학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최근 일부 거점 국립대에서조차 신입생 정원 미달이 발생할 만큼 많은 대학이 신입생 감소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 인권센터 설치 및 운영에 BK21, 대학 혁신 지원사업이나 2022년 교육부 대학 인권센터 선도모델 시범사업 예산 등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 외 장기적인 인건비 등은 결국 대학의 자체적인 노력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예산과 인력으로 최대한 효과, 형식적 요건의 충족과 같은 ‘효율성 중심’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형식적 설치 요건을 충족하되 최대 가성비를 내기 위하여 기존 의무 설치 기관인 학생 심리 상담센터에 인권센터를 결합하는 방식 등을 선택하는 것이다. 두 기관이 형식상 존재하지만, 업무 담당자를 겸직시키고, 같은 공간을 활용하고, 하나의 예산으로 두 가지 사업 효과를 노리는 방식으로 인력과 예산을 최소화하는 것, 이는 재정난을 겪고 있는 대학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게다가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에 필요한 인력은 충분했을까? 아니다.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인권 의제를 다룰 수 있는 인권 옹호자 양성 체계나 교육 프로그램이 전무하며 종사할 수 있는 전문 인력풀 역시 전문심리상담사, 법률전문가, 여성학 및 인권 전공자 등의 일부 전문 집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전문성 있는 인력의 공급 부족은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
결국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할 사람도, 업무 담당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도, 안정적이며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도, 그 사람과 환경, 그리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무화가 시행되었다.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이 필요하다. 차라리 기존 인권 기구들이 대학 내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단계적인 설치 의무화 기반을 마련한 후 시행했다면 어땠을까? 신규 인력을 양성하고, 기존 인력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체계화하고, 대학과 국가가 함께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와 방안을 찾으면서 말이다.
물론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준비가 부족했고 성급했다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정책은 대학 인권센터라는 명칭을 단 기구를 형식적으로 개소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제 그것이 대학 인권 기구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반쪽짜리 결과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인력의 전문성, 재정 안정 등 정책 보완이 시급하다
물론 반쪽짜리라도 대학 인권센터 설치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그 시기와 도입 과정에서 준비가 너무나도 부족했다는 점, 예산과 인력이라는 기구 기반 마련을 위한 국가적 책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 등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향후 기구의 설치와 운영 형식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하여 인력의 전문 역량 증진, 고용 안정화, 독립 운영 가능한 재원 확보 등 기관 위상 재정립과 운영 내실화를 위한 정책적 보완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비단 대학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뿐만 아니라 장애 학생, 양육자인 학생의 교육권 보장, 대학 내 괴롭힘 개념의 연구와 제도적 보완 마련 등 다양한 대학 내 인권 의제에 대한 인권옹호자로서의 대학과 정부의 책무를 규정하는 과정에도 동일하게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에게는 대학 내 인권 증진을 위한 현재의 정책들이 형식화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내지 않도록 정책 추진에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나와 같이 매일 대학 인권센터라는 일터로 출근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사와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인권 옹호자로서 서로 용기와 희망이 되어주길, 그리하여 대학 구성원 모두의 인권 증진을 위한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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