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 2022-01-06
늘 병원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아픈 것도 힘든데 막대한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정들었던 집까지 팔고 또 누구는 아예 치료를 포기한다.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이 있음에도 벌어지는 일이다.
이러니 민간의료보험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한국의료패널조사에 의하면, 100가구당 81가구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가구당 보험개수는 5.2개, 평균보험료는 월 32만원이다. 민간의료보험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전액 내며, 아픈 정도보다는 보험료 수준에 맞춰 보장해주고,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조장한다. 병원비가 시장상품으로 다루어질 때 생기는 가계부담, 형평성, 지출 낭비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제도이다. 그럼에도 시민의 입장에서는 아팠을 때 가계 파탄에 대비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가입해야 하는 선택지이니, 우리는 병원비 대응을 위해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 두 개에 의존하는 처지에 있다.
문재인케어에 기대가 컸다. 대통령이 환자들 앞에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때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할 때에는 정말 가슴이 설레었다. 지난 4년,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 선택진료제, 상급병실료가 거의 사라지고 MRI, 초음파 등에서 비급여의 급여화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중병을 앓는 고액 환자에게 병원비 걱정을 없애주는 수준은 아니다. ‘본인부담상한제’가 운영되지만 건강보험 급여 진료에만 적용되니 정작 본인부담금이 많이 나오는 예비급여와 비급여 비용은 방치한다. 또한 최종 안전망으로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가 있으나 중위소득 100% 이하 계층에게만 해당되고 본인부담금의 일정 비율을 지원하는 방식이며 지원액도 최대 3000만원으로 한정된다. 여전히 어떠한 병에 걸리든 국민건강보험으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는 못한다.
지난주 문재인케어를 넘어서겠다며 심상정케어 공약이 등장했다. 미용이나 성형 등은 빼고, 의료 목적의 비급여까지 포함해 1년간 총 100만원만 납부하는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이다. 이러면 본인부담금이 100만원이 넘는 약 600만명이 혜택을 볼 것이며, 여기는 총병원비가 1억원이 넘는 1만4000명도 포함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약 10조원은 지금 민간의료보험에 내는 보험료의 5분의 1만 국민건강보험으로 전환하면 조달 가능하다. 보험료에 따라 보장성이 연동되는 민간의료보험과 달리, 국민건강보험은 ‘버는 만큼’ 납부하고 ‘아픈 만큼’ 진료받는 제도이다. 가계 부담을 줄이고 계층 형평성을 도모하면서 병원비를 해결하는 사회연대를 구현할 수 있다.
비현실적인 상상이 아니다. 이미 서구 복지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무상의료를 운영하는 방식이 대체로 100만원 상한제에 가깝다. 몇 번 외래진료를 갈 때는 본인부담금이 우리보다 오히려 높지만 누적액이 일정 기준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국가가 책임진다. 보통 한 사람이 부담하는 병원비가 1년에 총 100만원 정도여서 시민단체에서는 이를 100만원 상한제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외래진료 본인부담 상한액이 한 해 약 14만원, 약값은 약 30만원이며, 입원은 하루당 1만3000원이고 30일이 넘는 날부터는 액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결국 외래, 약값, 입원비를 모두 합해도 한 해 본인부담금이 100만원을 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나라에서도 서구처럼 100만원 상한제가 조속히 시행되기를 바란다.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 두 개가 아니라 ‘건강보험 하나로’ 병원비를 해결하는 대전환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넘어야 할 특별한 장벽이 있다. 우선 상업적 의료체계에서 발생하는 과잉진료에 대응해야 한다. 의학적 성격의 모든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려면 진료 적절성을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 의사들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둘째, 건강보험료 인상이다. 국민들은 1인당 약 월 1만원, 가구당 월 2만3000원을 더 내고 기업과 국가도 그만큼 사용자 몫을 책임져야 한다. 전체 가입자, 특히 기업의 동의가 필수이다. 셋째, 민간보험사의 새로운 활로 모색이 불가피하다. 보험업종 노동자, 보험회사를 계열사로 가진 재벌과도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결국 100만원 상한제에서 관건은 제도의 설계보다는 이해관계의 조정이다. 의사, 가입자, 기업, 노동자, 재벌그룹이 함께 손을 잡아야 하는 일이다. 포기하자고? 아니다. 그러니 더욱 병원비 걱정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대역사를 만들어보자. 사회적 협약이 필요한 우리 시대 의제이다. 모든 후보들은 100만원 상한제를 약속하고 병원비 해결 정치에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