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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달갑지 않은 건강보험료 인상, 그래도 불가피한 이유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 가정의학과 의사 | 2022-09-11

지난 8월 30일 오후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에 설치된 건강보험 정부지원법 개정 관련 배너.
▲  지난 8월 30일 오후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에 설치된 건강보험 정부지원법 개정 관련 배너.

올해에도 어김없이 건강보험료 인상 소식이 부정적으로 보도됐다. 올해까진 월급의 6%대(정확히는 6.99%)였는데, 내년부터는 7%(7.09%)가 넘는다고 한다. 언론은 직장가입자당 월 2000원 정도 부담이 증가돼 고물가에 건강보험료까지 겹쳐 서민가계가 휘청인다고 변죽을 울렸다.

인상이 달갑진 않겠지만

건강보험료 인상을 달갑게 받아들일 시민은 많지 않다. 세금을 올린다고 하면 즉각 반감이 생기는 것과 같다. 병원 이용도 거의 없는데, 월급명세서에 계속 늘어나는 건강보험료 부담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많다. 그럼 이런 상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 정부가 차라리 건강보험료 부담을 확 낮춰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건강보험료 수입이 줄어들면 건강보험 급여혜택에 쓸 돈이 부족해지니, 어쩔 수 없이 건강보험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줄어드는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줄어들면 결국 환자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병원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나거나, 비싼 병원비에 고통받는 환자들이 늘게 된다. 시민의 건강보험료와 보험재정 그리고 건강보험 급여혜택은 연동돼 있기에 그렇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보다 건강보험료를 가장 낮게 인상했고, 대신 예정됐던 초음파와 MRI 보험급여 확대를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이치다.

물론 그런 논리를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다. 그래도 건강보험료 인상이 달갑지 않은 거다. 왜냐면 소득의 7%씩 내는 건강보험료가 아까운 것은 1년에 병원을 한 번도 가지 않는 가입자가 많기 때문이다. 월 400만 원의 직장가입자는 7%인 28만 원의 건강보험료가 부과되는데, 그중 절반을 사업주가 부담해주더라도 14만 원이다. 일 년이면 170만 원이다. 손해보는 느낌이다.

건강보험료, 나만이 아닌 가족을 위한 재원

그런데 실제로 건강보험료를 내는 게 가입자에게 손해인 것은 전혀 아니다. 내가 낸 보험료와 내가 받는 혜택만 고려하니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정확히는 내가 낸 건강보험료는 나보다는 오히려 내가 부양하는 가족을 위해서 건강보험료를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소득에 빠져나가는 7%의 건강보험료는 소득이 없는 부모님이나 배우자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쓰인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의료비는 젊고 건강한 청년층보다 10세 이하의 소아, 60세 이상의 노인세대에서 대부분을 지출한다. 가족내 경제 부양의 원리와 같다. 내 소득으로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가족 전체의 생활비도 쓰고, 아이들 교육비도 쓰는 이치다. 시간이 흘러 내가 소득이 없어지는 노후세대가 되면, 자식세대가 낸 보험료로 내 병원비를 해결할 것이다. 이것을 사회 전체로 제도화시켜 모든 시민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건강보험료가 아깝다고만 볼일은 아니다. 

이젠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건강보험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부담보다 혜택이 훨씬 크다

8월 2일부터 코로나19 확진자 접촉 무증상자들도 신속항원검사 시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사진은 지난 8월 1일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는 시민.
▲  8월 2일부터 코로나19 확진자 접촉 무증상자들도 신속항원검사 시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사진은 지난 8월 1일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는 시민.

건강보험료는 국민만 내는 게 아니다. 직장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7%)의 절반은 사업주가 낸다. 별도의 국고지원도 있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을 부담하는 주체별 비중은 대략 국민:기업:국가 = 55:30:15 정도쯤 된다. 실제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는 전체 재정의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국민은 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쯤만 부담하지만, 그 혜택은 전부 국민에게 돌아온다. 

건강보험공단이 자체 조사하는 세대기준 보험료 부담 대비 급여비를 보면, 평균 1.88배(2018년 기준)라 한다. 1만 원 정도 내고 2만 원 가까이 혜택을 보는 셈이다. 남는 장사다. 또 건강보험료는 소득에 비례해서 내므로 소득이 적은 계층일수록 부담대비 돌아오는 혜택이 크다. 하위 20%는 5.5배로 혜택이 아주 크다. 심지어 상위 소득계층도 혜택을 누린다. 상위 20%도 평균 1.2배 정도로 낸 보험료보다 돌아오는 혜택이 더 크다. 사업주부담과 국고지원의 효과가 이렇듯 크다.

이제 이 정도면 건강보험료가 아까운 정도가 아니라, 건강보험료를 좀 더 내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다. 낸 보험료보다 더 큰 혜택으로 돌아오니, 더 내고 더 높은 보장을 누리는 것이 이득이란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건강보험료의 보장률은 65% 수준에 불과하다. 병원비의 65%는 건강보험이 급여해주지만, 35%는 환자가 부담한다. 큰 병이라도 생기면 여전히 수천만 원의 병원비가 발생한다. 

건강보험 인상은 오히려 이득

만일 건강보험료를 더 올려 보장률을 80%로 올린다고 해보자. 큰 병의 보장률은 90% 이상으로 높이고, 경증의 보장률은 현행 70% 정도로 유지한다고 하자. 그래서 평균 80%라 하자. 그러면 큰 병에 걸려도 병원비 걱정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 이론적으로 현행 보장률을 65%를 80%로 올리려면, 현행 건강보험료를 24%쯤 올리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의 구조상 국민이 올리면 사업주 부담도 그만큼 오르고 국가 지원도 그만큼 오른다. 그래서, 실제 보장률 80%로 올리는 데 필요한 재원의 55% 정도만 국민이 건강보험료로 부담하면 되는 셈이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이득이다. 

더구나, 건강보험 보장이 확대되면 보너스가 또 있다. 서구 유럽의 국가들을 보면,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평균 80% 정도 유지하면 사실상 실손보험과 같은 민간보험은 필요 없게 된다. 건강보험만으로 병원비 걱정없이 해결할 수 있으므로, 한 달에 수만 원에서 십수만 원에 이르는 실손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

실손보험료은 건강보험과 달리 사업주가, 국가가 보태주지도 않는다. 과거 ‘건강보험하나로’ 운동이 벌였던 주장이 딱 그것이었다. 건강보험 하나로가 건강보험료 인상을 지렛대로 사업주와 국고지원도 늘림으로써 건강보험 보장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값비싼 민간의료보험 지출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보험료가 올라도 보장성 확대가 더딘 이유

이젠 건강보험료에 대한 의문이 많이 풀렸다. 그래도 아직 남는 게 있다. 지금까지 건강보험료는 계속 인상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강보험 보장률 확대는 정체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10년 전 건강보험료율은 5.8%였고, 당시 건강보험 보장률은 62.5%였다. 올해는 건강보험료율은 6.99%였고,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2020년)로 찔끔 올랐을 뿐이다. 이유가 뭘까? 여기에는 통제불가능한 요인과 통제가능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통제불가능한 요인이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노인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대표적이다. 인구가 늘지 않더라도, 인구집단의 소득이 늘지 않더라도, 인구중 의료비 지출이 많은 노인인구 비중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료비가 증가한다. 한국사회는 소득이 늘지 않아도, 건강보험료는 조금씩 증가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나라가 됐다. 그래서, 그동안 꾸준히 건강보험료는 인상했고 건강보험 보장을 늘려왔음에도 보장률 지표로는 큰 개선이 이뤄지지 못했다.

사실 건강보험료 인상에도 보장성 확대가 더뎠던 더 큰 요인이 있다. 통제가능한 요인으로 보험급여가 되지 않은 비급여가 지속적으로 팽창한 결과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는 지속적으로 건강보험 보장 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4대중증질환의 보장률을 크게 높였고, 상급병실에도 건강보험 적용했다. 특진료는 전면 폐지했다. 간호간병도 점차 늘려나갔고, 초음파·MRI에도 급여를 확대해 나갔다. 환자부담이 컸던 비급여를 지속적으로 급여화해 부담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했다. 보험료를 지속적으로 올린 이유다.

그런데, 기대만큼 보장률이 늘지 않았다. 비급여를 급여화하는데도 남아있는 비급여의 가격과 양이 지속적으로 팽창했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은 비급여 팽창의 주범이었다. 실손의료보험은 특히 도수치료, MRI, 영양주사치료, 백내장수술 같은 비급여가격을 상승시키고 양을 급격히 팽창시켰다.

지금 실손의료보험가 크게 오르고, 가입자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실손보험 지급액만 12조 원 정도에 이른다. 건강보험 급여를 지속적으로 확대해도, 밑빠진 곳이 있으니 제대로 건강보험 보장이 늘지 않는 이유다. 문재인케어가 절반의 성공으로 그친 핵심 이유도 실손의료보험 통제에 실패한 데 있다. 

여기에 민간중심의 의료공급체계도 얽혀있다. 한국사회는 공공병원이 부족하고, 그 자리를 민간의료기관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간의료기관은 공공병원과 달리, 생존을 위해서는 수익을 내야 하므로, 과잉진료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의료수요와 공급도 불균형으로, 요양병원이나 중소병원은 넘치지만, 정작 응급과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규모있는 종합병원은 부족하다. 의료공급의 불균형도 과잉경쟁과 과잉진료로 유발해 낭비를 가져온다. 코로나 유행이후 공공의료 강화가 요구됐지만 정권이 바뀐 후 그런 목소리는 사라졌다.

2021년 3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6회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 2021) 한 부스에서 관계자가 초음파 장비를 시연하고 있다. 2021.3.18
▲  2021년 3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6회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 2021) 한 부스에서 관계자가 초음파 장비를 시연하고 있다. 2021.3.18

건강보험료 인상, 건강보험 개혁의 시발점

이처럼 건강보험료는 우리 사회의 의료비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전히 높은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건강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건강보험료 인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건강보험료 부담 외에,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 덕에 가구당 매월 몇십만 원씩 민간의료보험, 실손의료보험에 쏟아넣고 있는 현실을 본다면, 건강보험료를 인상해서 의료비 걱정도 줄이고 민간의료보험 지출도 줄이는 정책은 국민에게 매우 유익한 정책임에 틀림없다. 

건강보험 보장이 확대되면, 불필요한 의료 이용도 늘어나지 않겠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 예를 들어 중증질환과 경증 질환 모두에 보장률을 확대하는 방식보다 의료비 부담이 크고 중증질환에 더 높은 보장을 해주는 방식을 취한다면, 불필요한 의료이용은 줄어들 수 있다. 사실 중증보다 경증질환에서 도덕적 해이는 좀 더 나타난다. 

고액질환중심으로 보장을 확대하는 방식이 본인부담 상한제다. 연간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 정책이 그렇다. 이 정책은 현행 제도에서 본인부담이 100만 원을 넘게 되면 그 이상은 모두 건강보험이 부담하자는 것이다. 이 정책은 경증질환자는 거의 혜택을 보기 어렵다. 본인부담이 100만 원을 넘어가려면 연간 총 병원비가 400만 원 정도는 돼야 한다. 웬만한 경증질환은 그 정도의 부담이 발생하기 어렵다. 만일 100만 원 기준이 당장 낮다고 느껴진다면, 300만 원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300만 원 이상의 본인부담은 건강보험이 부담토록 하자는 것이다.  

동시에 건강보험 인상이 온전히 건강보험 확대로 이어지도록 의료체계 개편도 필요하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의료서비스를 양보다는 질을 기반으로 보상해주는 가치기반 지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건강보험 급여화 대상에서 제외된 비급여도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의 건강보험 제도, 그동안 많이 발전했고 성숙했다. 보장률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암질환과 같은 중증질환의 보장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아졌다.  이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건강보험료가 인상된 결과고, 시민들이 크게 저항하지 않고 건강보험료 인상을 수용해준 덕택이다.

이제, 건강보험료 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료를 더 낼테니,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라는 요구를 해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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