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세계주거의날 주거권 칼럼] 집부자에겐 감세, 주거취약자에겐 공공임대주택 축소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 2022-09-30
10월 첫째 주 월요일은 '세계주거의 날'이다. 2022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10월 1일 서울역과 서울시청 일대에서 주거‧복지단체와 시민이 주거권 대행진을 펼친다. <프레시안>은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집걱정없는세상연대에서 보내온 반지하 참사, 공공임대주택, 전세 문제 등에 대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일주일 동안 연재한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불패신화가 계속되었던 건 부동산을 가지면 결국 가격상승 이익을 얻는다는 오랜 경험 때문이다. 경기 부침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늘 다시 올라 하늘로 치솟았다. 2020년부터 2021년 말까지 이어진 부동산 폭등 역시 부동산 소유 여부로 대한민국 시민을 두 계급으로 확연히 갈라놓았다.
집소유자 이익만을 대변하는 두 거대정당
땀흘려 얻는 소득이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건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부동산 가격은 집을 소유하든 임차하든 부담가능한 적정 수준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지난 2년 집값이 폭등했다면 지금은 이 가격을 하향 안정화하는 게 경제민주화의 핵심이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정치는 온통 집소유자 이해만을 대변한다. 집값 폭등으로 세입자들의 등이 휘는 상황에서도 두 거대정당은 집소유자의 이익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두었다. 집값 상승으로 힘겨워하는 세입자보다는 보유세, 양도소득세가 증가했다고 불평하는 집부자들의 이익이 이들에겐 훨씬 중요하다. 부동산 부자들의 자산 증가 특혜는 용인하고 이에 따른 일부 세금 증가는 감면해주는 집부자 정치이다.
집부자 보유세를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편법들
구체적으로 집부자 감세 조치들을 살펴보자. 먼저 집부자 대상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를 타격하고 있다. 작년 8월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1세대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상향하는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을 의결했다. 평상시는 그리도 서로 싸우면서도 종합부동산세 완화에는 거대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었다.
대선 과정에서는 양당 후보가 공시가격을 과거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선심 약속 경쟁에 나섰다. 집값이 크게 오르면 공시가격이 상승하는 건 당연한 일이건만, 보유세 인하를 위하여 공시가격을 작년 혹은 재작년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상식 밖의 시도였다. 사실상 부동산 과세체계를 무너뜨리는, 집소유자 표를 위한 막무가내 행보였다.
실제로 윤석열정부는 보유세 감세를 위한 특단의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7월 종합부동산세 시행령을 개정하여 주택분 공정시장가액비율 100%를 무려 60%로 대폭 낮추었다. 이러면 종합부동산세는 사실상 반토막이 되어버린다. 본법의 과세 내용을 급격하게 무력화하는 시행령 폭거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정기국회에 제출된 정부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은 종부세 기본공제액을 현행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1세대1주택자는 11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추가 상향한다. 심지어 1세대 1주택자에게는 2022년에 한하여 기본공제액을 14억 원으로 올리는 내용도 담겨 있다. 올해 종합부동산세를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려보니 별의별 무리수가 다 동원된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60%로 대폭 낮추어도 보유세 수준이 재작년으로 돌아가지 않자 기본공제액을 추가로 늘리겠다는 황당한 조치이다.
보유세 인하의 하이라이트는 다주택자 감세이다. 정부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은 현행 다주택자 중과세율을 완전 폐지한다. 현행 세율이 절반 아래로 낮아지는 대대적인 감세이다.
이렇게 종합부동산세를 망가뜨려도 되는가? 진정 집소유자들의 보유세를 낮추고 싶으면 집값하향 정책을 펴는게 정공법이다. 종합부동산세법 역시 법 제1조(목적)에서 “부동산 가격안정 도모”를 명시한다. 집값이 폭등했다면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여 집값 하향을 유도해야 하건만, 정부는 집부자 세금 감면을 위하여 종합부동세법 목적까지 훼손하고 있다. 정말 집부자 정부이다.
<종합부동산세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대하여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여 부동산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재정의 균형발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양도차익은 거두었으나 세금은 조금만
보유세뿐만이 아니다. 부동산을 팔아 얻는 양도차익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도 줄여준다. 이미 작년 12월에 두 거대정당은 1세대1주택 비과세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하여 부동산 시세차익을 원하는 집소유자들의 뜻을 충실히 반영했다. 아무리 1세대1주택자이라도 집값 상승으로 차익이 생겼다면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부과한다’는 원리에 따라야 하건만, 오래전부터 1세대1주택 비과세 특혜가 용인되어 왔고, 작년에 비과세 기준을 더 확대한 것이다.
양도소득세 깎아주기 경쟁은 1세대1주택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작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다주택자 중과세를 2년 유예하고, 이재명 후보는 1년 유예하겠다는 공약 경쟁을 벌였다. 이를 통해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하지만, 이처럼 집투기자들에게 사후적으로 출구를 열어주기에 ‘부동산 불패 신화’가 계속되어온 것이다.
결국 이 특혜도 실현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5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양도소득세 중과를 1년간 배제하였다. 보유기간이 2년 이상이면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들도 기존 양도소득세 중과(2주택 20%, 3주택 30%)에서 벗어난다.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들에게까지 이런 혜택을 제공해야하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
집부자에겐 감세 선물, 주거취약자에겐 공공임대주택 축소
당연히, 대대적인 종합부동산세 깎아주기는 정부 조세 수입의 감소를 초래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부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감세 규모가 연 1.7조원이다. 여기에 올해 7월에 단행된 종합부동산세 주택분 공정시장가액비율 인하까지 합산하면 감세는 연 4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건전재정’을 강조하면서 재정준칙까지 도입하려는 정부가 집부자들을 위해서라면 세수 감소도 마다하지 않는다.
더욱 개탄스러운 건, 윤석열 정부가 집부자 감세 잔치를 열면서 주거취약계층에게 절실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대폭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연 13~14만호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을 연 10만호로 낮춘다는 계획을 수립했고, 이를 바로 내년 예산안에 반영했다. 심상정 의원 보도자료에 의하면, 올해 공공임대주택 예산 총 20조 4,556억원과 비교하여 내년 예산안은 14조6827억 원으로 5조7729억 원, 28.2% 감소한다.
202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지옥고에 무려 86만 가구가 살고 있다. 여기에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까지 합치면 절대적 주거취약층는 약 200만 가구에 이를 전망이다. 아직도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위해 기다리는 줄이 길기만 한데 어떻게 이 예산을 줄일 수 있단 말인가?
세입자들의 분노를 두려워하라!
예상은 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집부자 행보가 너무 노골적이다. 정부는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절반에 가까운 가구들이 세입자라는 사실을, 지난 2년 집값 폭등으로 허리가 휘는만큼 집부자 정책을 향한 분노가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10월 1일은 주거의 날이다. 전월세로 힘겨운 세입자들과 주거권을 옹호하는 시민들이 “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을 외치며 거리를 행진할 예정이다. ‘약자복지’를 옹호하는 정부라고? 우리 시민들이 그 허상을 모를 줄 아는가? 세입자들의 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