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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연금, 구조개혁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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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2 03:03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연금개혁 논의에서 구조개혁이 떠오르고 있다. 국회 연금특위가 기존 모수개혁 논의를 구조개혁으로 확장하겠다고 나선 영향이다. 모수개혁이 현행 연금제도 안에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치를 일부 조정하는 부분 개혁이라면, 구조개혁은 연금제도 틀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다. 국민연금 급여구조에서 소득재분배 비중을 변경하거나, 기초연금에서 지급 대상을 줄이고 금액을 누진적으로 지급한다면 구조개혁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일반 국민과 특수직역 종사자의 연금을 통합하는 일도 또 다른 구조개혁이다. 당연히 모수개혁보다 구조개혁이 훨씬 큰 작업이다. 일부에서 국회가 연금개혁 책임을 회피하려고 의제를 넓히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연금개혁이 민감한 주제여서 정치권의 의도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정책적 측면에서, 구조개혁의 부상은 전향적인 변화이다. 오히려 연금개혁 논의가 본궤도를 찾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왜 구조개혁이 필요한가? 한국 공적연금의 특별한 한계 때문이다. 현행 제도틀 안에서의 수치 조정, 즉 모수개혁으로는 연금을 향해 던지는 시민들의 질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현행 틀에서는 무엇보다 급한 과제인 노인 빈곤에 대응하기 어렵다. 모수개혁에서 나올 수 있는 보장성 방안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혹은 기초연금 40만원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소득이 많고 가입기간이 길수록, 즉 노동시장 중심부일수록 연금수령액이 많다. 소득대체율을 인상해도 저소득 가입자의 연금액 증가 효과는 크지 않다. 기초연금도 그렇다. 노인 70%에게 동일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는 빈곤 노인의 처지를 그리 개선하지 못한다. 노인 빈곤에 대응하려면 기초연금을 하위계층 중심의 두꺼운 최저보장소득으로 전환하는 구조개혁을 이야기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고강도 재정안정화도 구조개혁을 불러온다. 미래 세대의 과중한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보험료율을 빠르게 올려 나가야 한다. 국회 연금특위 논의에서 상당한 수준의 보험료율 수치가 등장한 이유이다. 그런데 재정안정화를 위해서 보험료율을 계속 높여가면, 하후상박 국민연금 급여구조에서 상위소득자의 수익비가 1보다 낮아지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상황은 불가피하게 상위소득자의 급여를 늘리는 구조개혁을 요구한다. 동시에 이로 인하여 국민연금 급여가 줄어든 하위소득자의 노후소득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의 최저보장 방식 전환이 더욱 절실해진다.

노인 빈곤 대응과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현재 한국 공적연금이 달성해야 하는 핵심 과제이다. 일단 모수개혁이라도 먼저 하자는 제안도 의미는 있지만, 이번에는 시민들의 질문에 정면으로 응답하는 연금개혁이기를 바란다. 지금 시민들이 공적연금으로 최소한 노후빈곤을 막을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청년들이 자신도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구조개혁으로 중장기 연금체계 비전을 제시하고 이 청사진에 따라 단계적 개혁을 밟아가는 게 효과적이다. 그래야 연금개혁의 공감대와 추진력도 만들어낼 수 있다. 시민들은 이미 어려운 현실을 알고 있다. 국민연금에서 보험료율은 1998년부터 25년 동안 계속 9%이고, 제도 개혁도 2007년 이후 16년 동안 사실상 없다. 기초연금 역시 소득보장제도임에도 대상이 ‘노인 비율’로 정해지는 애매한 설계도가 2008년 도입 이래 그대로이다.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거나 조금만 수정하면 된다는 방식으로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

이제 연금체계를 바꾸자. 국민연금만으로는 저소득 노인의 소득보장을 도모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계층별 보장체계를 짜야 한다. 노후소득보장의 시야를 국민연금에서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포괄하는 다층연금체계를 넓혀야 한다. 바로 국민연금에서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집중하고, 기초연금은 하위계층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최저보장으로 전환하며, 퇴직연금은 중상위층의 노후연금으로 발전시키는 ‘계층별 다층연금체계’이다. 이러면 연금통합 구조개혁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일반 시민의 연금체계가 정립되면 특수직역 종사자도 이 연금틀에 편입하는 절차를 밟으면 된다. 예를 들어, 공무원도 일반 시민처럼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퇴직연금을 적용받는 방식이다. 이러면 모두가 같은 연금을 적용받으므로 형평성 논란도 사라질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연금개혁 발걸음이 너무 더디었다. 우리보다 미래 연금재정이 양호함에도 서둘러 선제적 개혁에 나서는 서구와 크게 비교된다. 다행히 이번에는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다. 구조개혁으로 그 길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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