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尹대통령의 사회보장의 정부 책임 인식, 우려된다
남재욱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기사입력 2023.06.08.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31일 ‘사회보장 전략회의’ 발언이 화제다. ‘약자복지’라는 모호한 방향 외에는 복지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던 현 정부에서 모처럼 대통령이 직접 복지정책에 대한 발언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약자복지와 마찬가지로 모호하긴 해도 꽤나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내용들을 포괄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문제는 그 충격과 화제의 방향이 모두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쪽이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회보장과 복지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발언이었다.
윤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현금복지”는 “정말 사회적 최약자 중심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과 사회서비스는 “시장화”하고 “경쟁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중앙-지방 정부 간, 정부부처 간 협업을 통해 복지체계를 통폐합하자는 발언이 더해졌다. 자기 부처 사업을 양보 못한다는 입장이 뇌물 받는 것 보다 더 나쁘다는 말도 의아하지만, 부처 간 협력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법이라고 선해하기로 하자.
우리나라 “현금복지”가 재정에 비해 과도한가?
과장법은 그렇다 치고 “현금복지”라는 족보 없는 표현으로 강조한 현금급여 지출 축소 필요성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사실 한 국가의 복지지출이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적합한지에 대한 합의된 기준은 없다. 뿐만 아니라 복지지출의 적정성은 지출액만 가지고 판단하기 어려우며, 지출구조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출수준에 대해 평가를 하려면,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이 그나마 적합한 방법이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은 12.2%로 OECD 38개국 중 36위였다. 사회복지지출을 현금급여 지출과 서비스 지출로 나누어보면 현금은 총지출과 마찬가지로 36위인 반면 서비스는 24위로 현금급여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자연히 총지출에서 현금지출의 비율 역시 41.0%로 OECD 평균(56.5%)보다 낮다. 다른 고소득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복지에 대한 총지출도 낮지만, 현금급여 지출은 더 낮다. 좀 더 최근인 2022년에 우리나라 복지지출은 GDP의 14.8%까지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OECD 평균(21.1%)과 격차는 크고, 현금과 서비스의 비율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나라의 “현금복지”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약자”도 아니고 “최약자” 중심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인식에 물음표를 띄운다.
물론 국가별 복지지출을 비교할 때는 단지 GDP 대비 비율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고령화 정도인데 고령화율이 높을수록 복지지출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고령화 정도는 OECD 평균보다 낮다. 고령화율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요인을 통제하고 복지지출을 비교한 연구들은 우리나라와 다른 고소득 국가 간의 복지지출 격차는 고령화율 등의 요소를 고려했을 때 감소하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지출이 낮은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려왔다. 이 점은 현금급여 지출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실제로 2019년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에 대한 현금급여 지출은 전체 현금급여 지출의 58.5%로 OECD 평균인 61.3% 대비 크게 낮은 것도 아니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이, 더구나 현금급여 지출이 과도하므로 최소화해야 한다는 인식은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노인빈곤률과 상위권에 위치한 노동연령대 인구 빈곤률을 고려하면 오히려 현금지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인구집단별 빈곤률 중 유일하게 다른 고소득 국가에 비해 낮은 아동빈곤률은 저소득 가구의 출산파업과 관련이 깊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금복지”를 “최약자”에게만 국한하여 최소화해야 한다는 근거는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서비스를 더 시장화하자고?
우리 복지체계에서 현금급여 비중이 낮다는 점을 논외로 한다면 “사회보장 서비스”라는 – 마찬가지로 족보 없는 – 표현으로 강조한 사회서비스 중심 복지에 필요성에 대한 언급은 그래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복지국가가 우리보다 현금급여 비중이 높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국가들은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튀르키예 등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국가들이다. 이를 참고로 한다면 당장은 부족한 “현금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현금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는 수준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서비스의 확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통령의 인식은 그 자체로는 바람직하다.
문제는 그 방향이 ‘산업화’와 ‘시장화’라는 것에 있다. 이미 우리의 사회서비스가 더 이상 시장화하기 어려울 만큼 시장화 되어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사회서비스 공급은 단 한 번도 국가에 의해 주도된 적 없으며, 언제나 민간에 맡겨져 왔다. 아래 표에도 제시된 것처럼 현재도 거의 모든 사회복지시설의 80% 이상이 민간에 의해 설치·운영된다. 특히 ‘사회서비스 산업화’의 방향이 수립된 노무현 정부 이후 20여 년간은 민간 영리기구의 사회서비스 공급이 계속해서 확대되었다. 그 기간 동안 여러 정부는 현 대통령의 인식처럼 민간의 공급자 간 경쟁이 서비스 질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런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민간의 공급자는 서비스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경쟁을 해왔고, 그 경쟁은 서비스 제공인력의 열악한 일자리로, 다시 열악한 일자리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낮은 질로 이어져왔다.
사회서비스는 ‘사회보장기본법’에 정의된 것처럼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삶의 질의 개선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사회서비스의 이와 같은 목적은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고, 양(+)의 외부효과를 창출하기에 어느 나라에서나 공적 재원을 통해 서비스 이용을 지원한다. 사회서비스의 이와 같은 특성은 이 영역에서 ‘시장의 효율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으며, 공공성의 보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간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영역은 ‘산업화’, ‘일자리 창출’, ‘시장화’의 기치 아래 확대되면서 최소한의 공공성 보장을 위한 조치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재 우리 사회서비스가 ‘실패’를 겪고 있다면, 그것은 산업화·시장화가 만들어낸 실패다.
지난 정부에서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하고 사회서비스 공급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강화하고자 하는 몇 가지 조치를 시도했던 것은 이와 같은 ‘사회서비스 산업화’가 초래한 실패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미 서비스 공급주체의 대부분이 민간, 특히 근래에는 영리부문인 상황에서 공공의 책임 확대는 쉽지 않다. 부분적으로 공공의 공급을 확대하고, 사회서비스 인력의 채용 및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서비스 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자 한 정도의 미력한 조치가 지난 정부에서 시도된 정책방향이었다. 그러나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이루어진 현 대통령의 발언은 그 나마의 반향조차 되돌려 또 다시 산업화와 시장화로 회귀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지금까지의 산업화와 시장화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반성조차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인데 말이다.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갈런드(David W. Garland)는 그의 저서 <복지국가란 무엇인가?>(원제: Welfare State: a very short introduction)에서 복지국가의 핵심에 시장 경제를 수정하고 윤리화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경제 과정에 부과된 사회적 보호(social protection) 체계가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시장경제에 대한 수정이라는 표현은 복지국가가 자본주의를 전복하고자 하는 기획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경제가 초래하는 불평등과 불안정을 관리함으로써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병행 발전하도록 하는 체계가 복지국가임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국가”와 그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시장 원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복지국가와 사회보장제도는 그것이 시장화됨으로써가 아니라 상호성, 재분배, 연대와 같은 다른 원리로 운영됨으로써 시장과의 길항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안정화한다. 복지국가와 시장경제의 이와 같은 관계는 민주주의 운영원리를 닮았다. 민주주의 하에서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은 얼핏 소모적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대립 속에서 사회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토론과 협상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해 나간다. 이 상황에서 대립하는 한쪽을 없애 버린다면 얼핏 효율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독재로 귀결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시장화도 마찬가지다. 시장과 길항하는 원리로 운영되어야 할 복지 영역에 시장 원리를 강제하는 것은 시장의 독재로 가는 길이다.
대통령의 ‘사회보장 전략회의’ 발언은 이와 같은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원리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수준이 똑같이 낮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모쪼록 우려가 우려로만 남기를 바랄 따름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