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우리나라 연금개혁에서 모범적이고 전향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나는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을 말한다.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가입자 단체와 일부 복지학자들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대폭 깎은 개악이었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정반대로 이 연금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현재 지지부진한 연금개혁의 방향을 찾는 의미에서 2007년 개혁을 다시 들여다보자. 우선 모범적인 건, 행정부와 정당들이 자신의 연금개혁안을 명확히 제시하고 논의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강하게 대립했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에 집중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기초연금을 주창하면서 평행선을 달렸다. 하지만 협의하고 타협해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정당마다 개혁안이 분명했고, 서로 조정하는 연금정치로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아직까지 자신들의 연금개혁 방안조차 내놓지 못하는 지금 정치권과는 확연하게 비교된다.
전향적인 건, 연금개혁의 내용이다. 이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는 주제이므로 자세히 살펴보자. 2007년 개혁으로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이 60%에서 40%로 내려가게 됐다. 이듬해인 2008년에 50%로 낮아졌고, 이후 연 0.5%포인트씩 내려 2028년에는 40%에 도달하게 된다. 소득대체율이 낮아진 건 국민연금 보장성에서 후퇴이다. 대신 노인 70%에게 적용되는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의 전신)이 도입됐다. 기초노령연금은 2008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에 상당하는 금액(8만4000원)을 지급하고 2028년 소득대체율 10% 금액에 도달하도록 법에 명시됐다. 그래서 소득대체율 인하만 이야기하는 건 당시 연금개혁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2007년 개혁의 핵심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낮추되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해 공적연금을 국민연금 단층 체계에서 국민·기초연금의 이층체계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당시 국민연금은 보험료와 급여의 수지불균형이 컸다. 연금수리적으로 수익비가 3배 넘으니 그만큼 후세대에게 재정 책임을 넘기고 있었다. 또한 국민연금 급여가 재분배 구조라지만 워낙 보험료율이 낮아 모든 가입자들이 낸 것보다 더 받는 ‘순혜택’을 얻는다. 여기서 순혜택은 보험료율 수준뿐만 아니라 가입기간의 영향을 받는다. 고용이 안정된 계층은 가입기간이 길어 더 많은 순혜택을 받고,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나 아예 국민연금 밖의 사람들은 혜택이 적거나 없다. 결국 세대 간·계층 간 형평성에 문제가 큰 국민연금 단층 체계였다.
2007년 개혁은 이 문제에 응답했다. 우선 국민연금에서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춰 수지불균형을 개선했다. 이렇게 해도 미래 재정은 불안정하지만 예전보다 개선된 건 분명하다. 계층 간 역진성도 완화했다. 소득대체율 인하분 20%는 40년 가입 기준 수치이므로 당시 평균 가입기간 전망치 약 20년을 적용하면 실질 하락은 10%가량이다. 여기에 실질 소득대체율이 10%인 기초 노령연금을 합산해 계층별로 연금액 변화를 분석하면, 평균 소득자는 국민연금의 실질 하락액과 기초노령연금액이 비슷하고, 저소득자는 국민연금 하락액보다 기초노령연금액이 커 총급여가 늘어나며 중상위 소득자는 반대이므로 총급여가 감소한다. 이렇게 2007년 개혁은 기초노령연금 도입으로 후세대 지출이 생겼지만 현 세대가 의사결정권을 가진 국민연금 지출 규모는 줄여 후세대의 부담을 작게 했고, 보장성에선 하후상박으로 급여를 개선한 전향적 개혁이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초저출생으로 국민연금의 인구구조는 불리해졌고, 노인 빈곤은 기초연금이 올랐어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2007년 연금개혁과 같은 방향으로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지 않을까.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이번에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 가계부담이 뒤따르지만, 이는 세대 공존을 위한 현 세대의 책임이다. 보장성에선 연금크레디트 확대, 도시지역 가입자 보험료 지원, 의무가입 연령 상향 등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려 실질 급여를 강화하고, 저소득 노인에게는 기초연금을 두껍게 지급해야 한다. 나아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퇴직연금을 1년 미만 노동자에게도 적용하고, 중간해지를 엄격히 관리해 노후 소득보장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 세대 간 형평성과 계층별 보장성을 개선하는 2단계 개혁이다.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은 말한다. 당시 개혁에서 ‘소득대체율 인하’만을 기억하고, 현재 보장성 논의에서 ‘소득대체율 인상’에 집착하는 협소함을 벗어나라고. 그래야 2007년 개혁처럼, 국민연금에서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고, 다층 연금체계에서 계층별로 적정 급여를 보장할 수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