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 평 >
정부 연금개편안, 우리는 무엇을 논의해야 하나
–제5차 재정계산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에 대한 연금유니온 의견–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공개되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에서 절박한 과제인 지속가능성 방안을 구체적으로 담지 않은 무책임한 방안이다. 정부의 개혁안 발표로 본격적인 연금개혁 논의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후속 논의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안이한 방안이다. 동시에 국고지원이나 보장성 강화 등에서 주목해야 할 주제도 담고 있다. 이에 연금개혁에서 지속가능성과 연금약자의 보장성을 중시하는 ‘미래세대·일하는시민의 연금유니온(이하 연금유니온)’은 정부 개편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히며, 이후 생산적인 토론을 제안한다.
우선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견이다.
첫째, 정부는 국민연금에서 재정균형 달성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이 정한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국민연금법 제4조는 행정부에게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방안을 담은 ‘국민연금종합 운영계획’을 국회에 제출하라고 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5년 주기로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이루어지고 종합개혁안을 마련하여 연금개혁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연금개혁 논의가 첫 단계를 열어야 할 정부가 그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있다.
둘째, 정부 개편안은 아예 구체적 방안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비록 장기 재정균형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현단계에서 추진할 수 있는 1단계 방안이라도 제시해야 하지만 이조차도 없다. 정부는 국회 연금개혁 특위와 협의하여 공론화 등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지만,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 후속 논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사회적 논의의 준거가 되는 기본 개혁안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 방식으로 제안한 연령별 차등 인상은 열어놓고 검토해볼만 하다.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의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건 문제이다. 그럼에도 연령별 차등 보험료율은 한국 국민연금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제안으로 평가한다. 이는 사회보험에서는 이례적인 방식이다. 그럼에도 한국 국민연금에서 연령별 제도 혜택의 차이가 상당히 존재하기 때문에 제안된 방식으로 이해된다. 가입기간이 짧게 남은 중장년은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대체율을 적용받았고 앞으로 보험료율이 인상되더라도 적용되는 기간은 짧다. 반면 청년은 앞으로 40%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적용받으면서 계속 인상될 보험료율을 감당해야 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남은 가입기간이 짧은 중장년층에게는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더 빨리 적용하여 재정 잭임을 부여하는 것이 제도 혜택의 연령별 형평성을 개선하는 방안일 수 있다. 보험료 부담만 강조하며 연령별 차별이라고 비판하기보다는, 기존 급여 혜택과 향후 보험료 납부 기간까지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연령별 차등 인상은 논의할만한 주제이다.
넷째, 정부가 국민연금의 국고지원을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실질소득을 높이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건 적절하다. 공적연금으로 국민연금에 정부 재정지원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 국고지원은 출산, 군복무 크레딧, 저임금 노동자 및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등 연금가입에 불리한 지위에 있는 가입자를 지원하는 ‘사회적 지원’과 낮은 보험료율로 인해 발생하는 급여재정 부족분을 보전하는 ‘적자 지원(정부안의 ’직접 지원‘)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공적연금의 필수적 역할이므로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야 하지만, 후자는 낮은 보험료율에 기인한 문제이며 낮은 보험료율은 순혜택에서 역진성까지 초래하고 있다. 이에 국민연금에서 국고지원은 ’사회적 지원‘에 집중해야 하며 ’적자 지원‘은 보험료율 수준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후에 검토할 주제이다.
다섯째, 출산크레딧을 첫째 아이부터 적용하고 이를 출산과 동시에 인정하고, 군복무도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하고 재정지원도 군복무 완료시점에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정부안은 전향적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연금크레딧을 운영하면서 실제 재정 부담은 미래세대로 미루는 문제가 존재했다. 이번에 이를 개선하는 작업은 유의미하며 정부안에 사전지원이 명시된 것은 기획재정부도 동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반드시 이번에는 연금크레딧을 확대하고 재정도 발생시점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여섯째, 정부가 재정안정을 위해 기금수익을 1%p이상 추가 설정한 것은 과도하며 이를 위해 기금운용 거버넌스에서 가입자 대표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도 적절하지 않다.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는 전문가 위원들의 심층 논의를 통하여 미래 기금수익률을 평균 4.5%로 설정하고 재정계산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정부안은 수익률을 여기에서 1%p 이상 추가로 제고하겠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대체투자 등을 확대하고 기금운용 거버넌스에서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본부의 권한을 늘리려 한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에서, 재정계산위원회가 설정한 수익률보다 더 높이겠다는 것은 그만큼 기금운용에서 위험을 높이는 일이다. 또한 이를 명분으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역할을 일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로 옮기는 것은 가입자 대표성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현재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가입자의 신뢰는 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입자 대표성을 주변화하는 조치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더 약화시키며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에도 부정적 역할을 미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다음은 노후소득보장 강화 방안에 대한 의견이다.
첫째, 정부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수준을 구체적으로 제안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하다.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현행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수준에서도 미래 재정불균형이 무척 크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면, 소득대체율 인상은 어렵다는 점을 명확하게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 다만,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이 OECD 가입국과 비교해 유사하다고 평가하고,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이 짧은 가입기간, 사각지대로 인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소개한 것은 적절하다. 이번 정부의 평가를 토대로 우리나라 명목 소득대체율의 수준과 효과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공유되기를 바란다.
둘째, 공적연금의 긍극적 목표는 노후소득보장이기에 이를 위한 종합적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국민연금 재정불균형 현실에서는, 향후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는 가입기간을 늘리는 실질 보장에 주력하고,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포괄하는 다층연금체계 내실화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연금 재정계산의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면서 노후소득보장성 강화의 시야를 다층연금체계로 넓히는 일이며, 이래야만 실질적으로도 계층별 적정 노후소득보장을 설계할 수 있다.
셋째,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여러 방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면과 한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우선 국민연금에서, 도시지역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절반 지원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건 전향적이다. 그러나 대상이 협소하고 지원기간이 너무 짧다. 사업장 가입자의 보험료 절반을 고용주가 책임지고, 농어민 가입자의 보험를 정부가 대략 절반 책임지고 있듯이, 도시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지원도 농어민에 준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연금크레딧 확대 방향은 적절하고 재정지원을 발생시점으로 명시한 것은 긍정적이다. 반면 이번 정부안에서 실업크레딧 개선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문제이다. 현재 실업크레딧은 인정소득 상한액이 낮고 지원기간도 생애 1년으로 제한된다. 불안정 취업자가 많은 현실에서 실업크레딧 강화도 추진되어야 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은 이미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서 특례적용되고 있으므로 이에 준하여 즉시 시행해야 한다.
의무가입연령 상향도 이미 60~64세 연령층의 고용률이 대략 60% 수준에 도달해 있으므로 조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수급개시연령 상향은 65세 이후 소득공백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고령자 계속 고용과 다른 노인복지 등의 개선을 위한 정책 제안이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다층연금체계의 내실화를 위해서는 기초연금 인상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며, 퇴직연금도 1년 미만 고용 노동자에게도 적용하는 보완방안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주제인 ’국민연금 재정방식 전환‘에 대한 의견이다.
정부 개편안에서 예전과 다르게 추가된 주제가 국민연금을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거나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논의 의제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최소한 내는 만큼 받는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국민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확정기여형은 공적연금에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상당 수준으로 확보한 제도에서 유효한 방식이다. 서구 일부에서 확정기여형을 시행하는 것은 그만큼 각국이 국민연금(소득비례연금)에서 미래 재정균형을 달성하는 제도개혁을 어느 정도 달성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한국 국민연금은 재정불균형이 외국 어느 제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에 부합하는 수지균형 보험료율이 약 20%라는 점을 감안하면, 확정기여형 전환은 현행 보험료율 9%에서는 급격한 급여 하락을 의미한다. 이에 확정기여형 전환은 국민연금의 재정불균형이 상당 정도 개선된 시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중장기 과제이며, 공적연금의 보장 역할에서 바람직한 방식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한 제도이다. 향후 이 의제가 논의되기 원한다면, 우선 현단계에서 국민연금 재정안정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현단계에서 집중할 과제를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시대 국민연금기금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한다.
정부 개편안에 없고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에서도 다루지 않았지만, 국민연금기금의 역할은 단순히 기금수익에만 한정할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국민연금은 시민의 노후를 보장함과 동시에 사회보험으로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목표를 분명히 가져야 하며 이는 기금운용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이다. 무엇보다, 대표적인 좌초자산으로 꼽히는 석탄 발전에 계속해서 투자하는 것은 노후 안정과 지구의 지속성 어느 것도 보장하지 못한다. 탈석탄 선언을 해놓고, 석탄투자제한 정책 시행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놓고도 정부는 어떠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를 심화시키고 현세대와 다음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민연금기금의 석탄투자는 멈추어야 한다.
시민사회, 국회가 연금개혁을 논의하자.
이제 연금개혁의 공은 사회적 논의, 국회로 넘어 왔다. 정부가 가장 뜨거운 주제인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후속 논의가 얼마나 활성화될 수 있을지 우려가 든다. 그럼에도 연금개혁은 초고령사회를 맞아 노인의 소득보장을 확보하고 이를 위한 재정의 지속가능성까지 도모해야 하는 무척 중요한 과제이다. 이제 시민사회가 적극 의견을 개진하고, 국회도 총선을 핑계삼지 말고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 앞으로 국회의 공론조사 작업과 함께 사회적 토론이 본격화되기를 바라며, 우리 연금유니온도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