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다
고현종 노년 유니온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23.12.20.
“나 좀 죽여줘. 제발 부탁이야.”
아내는 1년 동안 남편인 정 씨(80세)에게 부탁했습니다. 차마 정 씨는 아내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엄연히 살인이니까요.
아내는 20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아내 병세는 조금씩 악화했고 아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정 씨는 아내 병간호뿐만 아니라 자녀 돌봄도 책임진 다중 간병인입니다.
아들은 나이가 50살이지만 몸은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입니다. 키 130cm에 몸무게가 30kg 남짓입니다. 아들은 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몸과 마음 발달이 더뎠습니다. 복합 장애 1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정 씨 부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입니다. 정 씨 아내는 아들에게 물리치료, 재활치료, 음악치료까지 안 해본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병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30년간 아들 병시중을 한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때부터 정 씨는 아내와 아들의 병간호를 도맡아야 했습니다. 직장도 그만두었습니다. 모아두었던 돈도 집도 병원비, 간병비로 사라졌습니다. 아내는 이런 형편을 알았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결행했을 텐데,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 가는 상태인지라 남의 도움 없이는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 정 씨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정 씨도 병간호가 너무 힘들어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막상 아내로부터 ‘죽여 달라’는 말을 듣자 아내와 아들을 끌어안고 울기만 했습니다.
‘죽어서라도 모든 걸 끝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정 씨와 아내는 했을 것입니다. 50세가 된 아들이 죽고, 한 달 후 아내도 죽었습니다. 두 사람을 하늘로 보내고 정 씨는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 씨는 아내와 아들을 간호하면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시한부 사람들을 돌보면서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살인을 사육하는 일
간병 살인으로 일컬어지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80대 노모는 정신 질환을 앓아온 40대 딸과 끈으로 몸을 묶은 채 한강에 투신했습니다. 시신은 꼭 껴안은 팔 모양 그대로 발견됐습니다.
50대 아버지는 집에 불을 질러 25년 돌본 식물인간 아들과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꼭 껴안은 채 한 몸처럼 발견됐습니다. 마치 시신이 한 구처럼 보였습니다.
아들은 테이프로 엄마의 입과 코를 막고 나서 엄마 품에 머리를 묻었습니다. 10년 간병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 편안하게 해드리고 저도 따라갈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유방암에 걸린 아내는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남편은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도왔습니다. 남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 선천성 뇌 병변에 걸린 딸까지 돌보는 다중 간병인이었습니다.
‘간병 살인’을 한 이들은 주변에서 희생적인 부모이거나 효자, 효부로 불린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끝 모를 간병의 터널에서 결국 무너졌습니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다른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가정에서 돌봄을 받는 환자를 100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20가구 가운데 한 가구는 누군가의 집에서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가족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밥을 떠먹이고 욕창을 막으려 체위를 바꾸는 중노동을 일상처럼 반복합니다.
가족 간병 4명 중 3명은 경제적 압박을 받습니다. 월 평균 191만 원을 지출한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서울신문>에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간병 살인 판결문 42건을 분석한 결과, 36%가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간병 살인은 국가도 책임이 있다는 뜻에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절망에 빠져 죽고 죽이도록 언제까지 이렇게 놔둘 것입니까.
“살아갈 날이 많은 게 문제였어요”
젊은 남성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의 고백입니다.
“살아갈 날이 많은 게 문제였습니다. 커터 칼날로 촥촥촥촥 슬라이스 당하는 느낌. 한 번에 16알 약을 먹었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삿바늘을 찔렀습니다. 비명 지를까 봐 수건을 입에 물고 재활치료 받았습니다. 이를 악무는 습관이 생기고, 치아가 뒤틀리다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한 여성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환자는 부모님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드려 후회합니다.
“엄마, 아빠 때문에 버티고 있다. 그러니 잘해라. 나는 살 이유가 없는데 그래도 아픈 딸로 남는 게 낫지 않느냐”며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마음에 없는 말까지 했습니다.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을 앓고 있는 김경태 씨는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안락사하기 위해 스위스 디그니타스에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수시로 몰려드는 통증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많습니다. 나중에는 통증을 참느라 손톱과 발톱을 남김없이 뜯었습니다. 김 씨가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하루에 먹는 약만 24알입니다. 모르핀, 옥시코돈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 근육 이완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씨는 말합니다. “하루하루 사는 게 고문을 받는 것 같다”고.
“오래 앓는 것은 삶을 갉아먹는 일, 내 의지대로 작별하고 싶어”
우리가 ‘간병 살인’에 이르게 된 가족들의 고통을 알 수 있을까?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이들은 말합니다.
“오래 앓는 것은 삶을 갉아먹는 일입니다. 내 의지대로 작별하고 싶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미련은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필요가 없을 때고, 또 내가 살아온 과정에 비해서 더 살아 봤자, 뭐 득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살아온 괜찮은 날들을 까먹는 일밖에 없는 겁니다. 까먹는 일, 그럴 바에야 굳이 연명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이들이 원하는 건 단 한 가지입니다. “내 삶을 끝낼 선택의 기회를 달라.”
자살과 안락사의 차이
필자가 안락사 합법화 거리 홍보활동을 하니, 한 신문사 논설위원이 전화해서 물었습니다.
“안락사는 결국 자살 아닌가요?”
안락사 입법을 반대하는 종교계에서도 이것은 자살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자살과 안락사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살은 충동적이고 폭력적, 격리, 은둔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독극물을 이용해서 혼자서 쓸쓸히 죽고요. 반면에 안락사는 온건하고 평온한 죽음입니다. 가족과 친구,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이별을 고합니다. 가족, 전문가의 도움과 협의를 바탕으로 안정제, 근육 이완제 전해질을 이용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안락사보다 호스피스 확대가 우선이다?
안락사 도입을 요구하면 호스피스 완화 치료를 확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호스피스 완화 치료가 고통 없는 평온한 죽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연명 치료를 안 할 뿐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죽게 놔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와 함께 활동했던 어르신이 전립선암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치료받았습니다. 고통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피폐해졌고, 죽기 며칠 전부터는 사람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호스피스 완화 치료 또는 사전연명의료결정법이 안락사와 같은 문화를 제도로 끌어들이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국가 생명 윤리정책원에 등록된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등록기관들과 일자리 사업을 했었는데, 여기서 활동하는 상담사 분들과 대화하면서 놀랐습니다. 적어도 사전 연명 의료 의향 상담사들은 죽음에 대해 열려 있는 줄 알았는데, 조력 존엄사, 안락사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고 “그거 불법 아니냐”는 말만 되풀이해서 죽음에 대해서 다양하게 열려 있어야 할 분들이 오히려 더 꽉 막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 생명 윤리 정책원 사람들과도 ‘조력 존엄사’, ‘안락사’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더군요.
이게 ‘연명의료 결정법’이라는 법 테두리 안에서 사고를 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하나의 법, 제도, 문화가 만들어지면 사람의 생각을 가두어 놓습니다. 그래서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안락사 도입에 앞서 선행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합니다. 역으로 안락사 도입을 통해 호스피스 완화치료가 확대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안락사가 합법화된 벨기에와 미국 오리건과 워싱턴주 안락사 실행 환자의 74~76%가 호스피스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안락사하기 전에 호스피스를 대부분 이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락사(조력존엄사)가 도입된다고 생명 경시 풍조가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률은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019 자살예방백서’에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인구10만 명 당)은 2015년 기준 58.6명으로 OECD 회원국 18.8명보다 훨씬 높고 2위 슬로베니아 38.7명과도 큰 격차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장수 국가인 일본은 22.8명으로 11위를 기록했고, 2000년대 초반 자살국가라는 오명으로 유명했던 핀란드도 15.1명으로 19위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안락사를 허용한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가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은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자살율이 낮습니다.
전 국민의 70%가 카톨릭 신자인 스페인에서 2021년 안락사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날 스페인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말했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더 인간적이고 공정하며 자유로운 나라가 됐다.”
“사회에서 널리 요구되는 안락사법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안락사, 국민이 원한다
지난 7월 <서울신문>이 인용 보도한 설문조사를 보면, 의사 조력 사망 도입 물음에 국민의 81%, 의사 50%, 국회의원 85%가 의사 조력 사망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안락사 허용을 찬성하는 이유로는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52.0%)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특히 20대(67.3%)와 30대(60.2%)에서 이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젊은 세대는 안락사를 선택 할 수 있는, 또 다른 죽음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밖에 ‘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34.9%)도 안락사 찬성의 주된 이유로 꼽혔습니다.
안락사를 허용할 환자의 상태로는 진통제로 고통을 막을 수 없을 때(48.5%) 식물인간 상태(22.4%) 의사로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12.2%)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할 때(11.0%) 등의 순이었습니다.
사는 게 지옥인 사람들에게 무슨 권리로 살아가라고 하는 겁니까!
영화 <씨 인사이드>(2004,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에서 라몬 삼 페드로는 26년 전 바다에서 다이빙하다가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가족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입으로 펜을 잡고 글을 써 왔던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라몬을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찾아와 설득합니다. 자신을 위해 삶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라몬은 말합니다. “당신을 위해 살아 달라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느냐.”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붙잡아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바라는 마지막 모습은…?
삶의 끝에서 당신이 언제 어디서 죽을지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병원에서 혼자 죽지 않고 집에서 내가 정한 시간에 죽을 수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마지막 대화를 미리 준비하고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나이가 들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입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문제는 하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입니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좀 더 인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