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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만복칼럼] 독박 간병과 간병 살인, 그 사이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간병 걱정 없는 나라, 가능합니까?

강지헌 병원비백만원연대 간사  |  기사입력 2024.06.13.

이달에도 간병 살인이 발생했다. 지난 달에도 발생했고, 다음 달에도 발생할 것이다. 매달 1.4명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손에 죽는다. 혼자서는 대소변을 가릴 수 없고 2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바꿔주지 않으면 온종일 누워있어야만 하는 침대에 짓물러 피부가 터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가족의 손에 죽어 나간다. 월 400만 원에 이르는 간병비에 가정 경제는 파탄 나고, 돌봄자의 정신은 황폐해지고, 한국 사회의 강고한 가족주의 복지체계에 내몰린 가족은 독박 간병을 하다가 결국 몰락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간병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내년 노년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움직인다. 공적 돌봄 체계의 부실함으로 국민이 극한으로 내몰리는 현실과 초고령화가 맞물리면서 드러나는 위험 징후가 심상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말 윤석열 정부는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을 발표했다. 22대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1호 공약으로 내걸었던 ‘간병비 급여화 3법’을 추진하고 있다. 늦었지만 간병 문제를 두고서 사회적 해법을 모색한다는 데, 긍정할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법을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내용의 실효성과 책임성을 따져야 한다. 

▲ 간병 살인 가해자 및 피해자(2006~2018). 노인 간병 범죄 원인 분석과 대책 방안에 관한 연구, 박숙완(2021).

간병, 환자의 눈으로 개혁해야 

윤석열 정부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의 첫 번째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확대 강화다. 통합병동 병상수를 늘리고, 환자 대비 간호사 수를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2015년 시작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도입 9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작 일선 병원의 병상수는 28.9%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경증 환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설문(2023)에 따르면, 간호·간병 통합병동을 이용하고 싶었으나 병원으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을 가진 환자가 20.6%로 5명 중 1명이 거부당했다.

중증 환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2022년 기준 간호·간병통합병동을 운영하는 611곳의 서비스 병동 내 중증도·간호 필요도가 상위에 해당하는 환자의 비율은 12.9%에 불과하다. 박숙완의 연구(2021)에 따르면 간병 살인 피해자 중 절반이 넘는 53.7%가 치매 환자이다. 치매와 뇌혈관 질환 등 장시간 고난이도 간병이 요구되는 중증 환자일수록 간병 살인 등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이 크다. 그럼에도 치매 등 중증 환자가 통합병동 내 13% 정도에 불과한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간병 필요도와 무관하게 통합병동 인력 배치 기준에 따라 수가를 지급함으로 인해 경증 환자의 통합병동 입원만 늘려도 병원에서는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중증환자를 전담하는 ‘집중 간호 간병실’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병원의 수익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중증 환자가 문전박대당하는 현실은 개선되기 어렵다. ‘간병 필요도’에 따른 수가 지급이 선결 과제다. 

두 번째는 ‘요양병원 간병 지원사업’이다. 요양병원 간병 지원사업은 올해 7월부터 시작 예정이었으나 4월로 앞당겨 시작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정작 본 사업 시행은 2027년 차기 정부 이후로 미뤄 두었다. 재원 마련에 대한 로드맵 또한 마련되어 있지 않다. 환자의 의료와 ‘간병 필요도’에 따라 요양병원과 요양원, 그리고 간병인과 요양보호사 간 역할을 정확하게 정립하고, 역할 혼선에 따른 갈등을 중재할 정치적 의지 또한 보이지 않는다. 시범사업으로 끝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다. 

고립을 넘어서는 역량 

‘간병 걱정 없는 나라’가 못미더운 가장 큰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 기조 때문이다. 정말로 간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간병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을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으려면, 정부 지자체가 공적 돌봄서비스 체계를 수립해 단단히 뿌리내려야 하지만 역행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지원 등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이 국민의힘 주도와 민주당의 방임으로 통과되었다. 돌봄 사회에서의 심각한 역행이다. 

간병비 부담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가족을 차마 요양병원에 보낼 수 없어 재가요양을 선택한 가족은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더라도 길어도 8시간의 간병 지원만 받을 수 있다. 아무리 깊은 효심과 사랑으로 버틴다고 하더라도, 간병에 직면한 가족들은 점차 경제적·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지역사회의 역량이 부재하다면 위기가정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간병비를 벌기 위한 노동에서 퇴근하면, 가정에 돌아와 요양보호사와 간병 노동을 교대하고, 하루도 쉴 수 없는 삶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겠는가. 

독박 간병에 내몰린 가족이 간병 살인이나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6년 3개월이다. 간병 현장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간병은 한 가정과 그 주변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의 관계에 기반한 주변인의 사적 부조도 점차 힘들어지는 시기에 이르면, 어김없이 한 가정이 파탄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대부분의 간병 살인, 자살은 돌봄자의 심각한 무기력과 우울증,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폭발하듯 발생한다. 그 시간이 6년 남짓이다. 

‘간병 걱정 없는 나라’의 조건 

‘간병 국가책임제’를 목표로 두고 복지시스템의 대개혁을 감행해야 한다. 내실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확대와 지속적인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통합돌봄 강화, 사회서비스원 등 공적 돌봄체계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 ‘돌봄국가’의 비전 없는 ‘간병 걱정 없는 나라’는 무망하다. 간병은 한 가정이 오롯이 감당하기가 어려운 문제인 만큼, ‘죽어야 끝이 나는 전쟁’이라고 불리는 문제인 만큼, ‘간병 국가책임제’를 향한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간병 걱정 없는 나라’의 조건은 시민의 끝이 없는 관심과 요구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선의가 자족적인 것에 머무를 때, 사회는 빠르게 퇴보한다. 일시적 관심과 지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고립된 상태로 하루하루 피폐해지는 사람들의 삶을 외면할 수 없다면, 사회의 역할을 찾고 더 나은 해법이 가능한지 되물어야 한다. 우리 모두 돌봄자가 된다. 함께 묻자. 

간병 걱정 없는 나라, 가능합니까?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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